최종편집일 : 2023-05-30

아내(30) - 엄마의 배추

기사입력 18-09-28 17:37 | 최종수정 18-09-28 17:37

본문

아내(30)

-엄마의 배추

 

그 해

엄마는 배추를 묶지 않고 그냥 가셨다

 

서리가 올 무렵

다른 집은 모두 배추를 묶는데

유독 우리 집 배추만 묶지 않고 그냥 두었다.

동네 사람들이

왜 묶지 않느냐고 따지면

엄마는 슬그머니 웃고 계셨다.

속이 너무 꽉 차면 맛이 없다며

너무 단단하면 들여다볼 틈이 없다는 말씀

슬그머니 아들에게만 일러주셨다.

 

엄마는 아들을 회초리로 때리며

야무지게 키우셨지만

끝내 묶지는 않으셨다. 아니 못하셨다. 엄마는

알차지 못하고 똑똑하지는 더욱 못한

어눌하고 속이 텅 빈 조선 배차 한 포기

이 풍진 세상에 풀어놓고 그냥 가셨다.

 

[시작메모] 엄마가 안 계신 올 해 우리 집 김장 전투는 아내가 총사령관 역할을 하며 진행되었습니다. 내 년 봄까지 먹어야할 일이니 전투에 버금가는 중요한 행사였지요. 긴장하는 총사령관을 보좌하며 배추 농사를 책임지었던 보급부대 사령관 아버지는 우리 집 배추가 맛있다며 계속 강조를 하십니다. 비법은 묶지 않은 배추라는 것입니다. 묶지 않아 속이 빈 배추가 맛있다는 아버지의 어색한 논리 배경에는 우리 집 김장의 전직 총사령관 엄마의 삶이 들어있었습니다.

 

김장은 긴할 때 먹기 위해 보배로이 감춘다는 의미에서 진장(珍藏)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배추와 양념 그리고 식구들의 역량이 집결되는 김장에는 숨겨진 이야기와 지혜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당신의 보배로운 가르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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