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24) - 친구 기다리기
본문
아내(24)
-친구 기다리기
글쓰기 대표인 친구가 선생님과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복도를 걸어가 창문 틈으로 친구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눈물을 잡고 그네를 타거나 조례대에 마음을 벗어놓고 희미한 운동장의 트랙을 서성거렸다. 플라타너스 둘레를 재어보고 잘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숙이기도 하였다.
십리 길이 먼 거리는 아니었으므로
나는 기다리더라도 같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함께 가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삶을 서성거리는 것이나
나는 그 기다림이 아름답다고 믿고 있었다.
정아, 너는 내가 서성거림의 명수인 줄
일찌감치 알고 있었는지
공부만 계속하고
기다리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도, 가슴이 아픈 오늘은
플라타너스를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나 정말 혼자 먼저 갈 지 모른다.
[시작메모] 세상의 모든 관계는 외롭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서로 외롭고 친구나 부부 사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친구가 되어가는 부부 사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측은해지고 외로워집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제 역할은 선생님과 특별과외를 하는 친구를 기다리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공부를 다 할 때까지 주위를 서성거리는 일이 제 운명이었습니다. 참 외로웠을 녀석을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오늘은 일회용 커피를 사러간 아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나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까짓 플라타너스 꼭대기를 쳐다보며 좀 퍼부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