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19) - 늙은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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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19)
-늙은 자판기
정든 님 오기를 기다리는
아리랑 고개 주막집 분위기 커피 자판기가
하나 둘 사라집니다.
불 꺼진 자판기는 연락 없는 당신입니다.
빈 집 홀로 지키다 떠나시는
우리 마을 아지매 신작로 바라보다 굳어진 얼굴입니다.
바람 부는 날
맛있는 커피 한 잔 내어주던
가는 다리(세천) 그 자판기 사라진 날
울다가 울다가
아무 곳에나 동전을 널고 스위치를 누르면
함박눈이 우르르 쏟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단맛 강한 그대 그림자가 우르르 우르르
쏟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노트] 자판기 두 대만 있으면 아이들 공부를 시키던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판기 사업이 잘 되던 시절은 일자리가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친구 정찬이도 일감이 많아 행복하던 시절, 리어카 좌판에서 카세트테이프도 두 개씩 사고 남은 돈으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마시던 시절이었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값이 싸다는 것과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마시던 자판기 커피를 찾아갔는데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붙들걸 그랬습니다. 가지 말라고 매달릴걸 그랬습니다. 그 자판기 구석에 내 가난한 겨울을 넣어두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