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군농회의 농업창고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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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창고 운영 취지는 농업 경영자가 생산한 곡물을 저렴한 보관료를 지불하고, 완전무결하게 보관하면서 적정 시기에 유리하게 판매하도록 알선하여 농촌경제를 윤택하게 함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벼(禾)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 24만 석이나 생산되면서 보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위해 ‘상주군농회’에서는 농업 창고 운영에 관한 사업을 1930년 12월 8일 인가를 받아 12월 10일 임시 창고(借庫)를 준공하여 사업을 개시했다. 이때 임시 창고 규모는 전체 250평, 사업 실적은 현미(玄米) 494석, 벼 5,790석을 수용했다.
1931년에는 남성동 168-2번지 일대에 대규모의 창고를 건립했는데 이 사진은 건립 당시의 사진이다. 부지 1,572평에 창고 120평형 3동 360평, 사무실 20.5평, 정현(精玄)공장 42평, 하옥 120평이 건립되었고, 정현기(精玄機) 2대, 정백기(精白機) 1대를 설치했다.
공사비는 지방비 35,592원을 보조받은 44,600원으로 상주의 키노시타시노 스스무(木下市之丞)씨 청부(請負)로 1931년 5월 31일 준공됐다. 창고업에 대한 행정적 지원으로서 1931년 ‘조선농업창고령’이 시행되었고, 1961년에는 ‘농업창고업법’으로 변천되어 시행되다가 1996년 폐지된다.
이 시설은 1950년 한국전쟁 때에 미군이 후퇴하면서 본점의 창고 4동 320평을 고의로 불태웠고, 옥산지점 1동 100평과 함창지점 1동 200평은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처음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정부가 관할하는 양곡의 보관사업만 주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건립된 창고 3동 중에서 1동, 1층 연면적 495.87㎡만 지금 남아 있으며, 2006년 12월 4일 국가 등록문화재 산업시설로 지정되어 ‘상주농업협동조합’에서 관리하고 있다.
1956년 당시에는 보관량이 양곡 237,763가마니(叺), 비료 19,890가마니, 짚 제품(藁工品) 1,878동(桐)이었다. 본점(本庫)은 남성동 171번지에 두었고, 함창읍 구향리, 사벌면 원흥리, 청리면 청하리, 화서면 신봉리, 모서면 삼포리, 모동면 용호리에 6개의 지점(支庫)을 두었다. 부지는 본점이 5,082평, 지점이 3,648평이었고, 창고는 본점이 5동 580평, 지점이 350평이었다. <사진 : 경북연선발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