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지역의 금융조합(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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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상주에는 금융조합이 7개가 있었다. ‘상산금융조합’이 1907년 9월 24일 가장 먼저 설립되었다. 그 이후에 1919년 1월 20일 함창, 1922년 9월 1일 화령, 9월 12일 상주, 1925년 12월 9일 옥산, 1928년 12월 3일 낙동, 1930년 12월 26일 모동 금융조합이 각각 설립되었다.
‘상주금융조합’은 이나가키 도쿠사부로우(稻垣德三郞)가 인봉동에 설립했다. 그는 일본 미에현(三重縣) 출생으로 1907년 조선에 건너와 처음에는 경성에 거주하면서 약종상을 하여 발전하다가 1910년에 상주로 이주했다. 1935년에는 상주의 장로(長老)가 되었으며, 일본회도 조직했다. 일본인 자제들의 학교를 ‘학교조합회’를 통해 설립했했으며, 시구개정의원(市區改正議員), 철로건설기성회 의원에 추천되었다. 신사(神社) 이전 문제 등에 매진하였으며, 경북자동차회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이 사진은 1937년 4월 ‘상주금융조합’ 정기총회 사진이다. 연단에 있는 사람은 이나가키 도쿠사부로우 조합장과 이와나가 슌이치(岩永俊一) 이사, 좌측 앞쪽에 앉은 사람은 서기로 보인다. 이때 조합원은 718명, 출자금 29,500엔, 대출금 267,365엔, 예금이 303,585엔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총회 장소는 ‘상주연무장(於尙州演武場)’이란 사진 기록으로 보아 경찰서의 경찰 연무장이다. 이때 경찰서는 왕산 남쪽에 1921년 6월 12일 74.5평의 청사를 짓고, 1927년 11월 16일 연무장을 낙성하였는데 그 건물이다.
조합원은 두루마기와 갓을 쓴 한복 차림새로 보아 대부분 조선인이며, 우측 앞에는 중절모 2개를 걸어 놓고 인사를 하는 사람은 조합의 중책을 맡게 된 신규 임원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산금융조합’에서는 ‘경상북도 금융조합 연합회’를 대구에 설치하기 위하여 재무서의 주사를 했던 다케다 하쿠조오(武田百藏) 이사 주관으로 조합원 936명 중 549명이 1918년 10월 18일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결의하기도 했다. 이 결의는 10월 28일 26개 금융조합이 경상북도에 신청했다. 이때 이사는 조합장보다 운영에 관한 실제 권한이 큰 시기로서 ‘식민지 조선의 첨병’이라고도 했다. <사진 ⓒ상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