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1-09-27

공립상주보통학교 (52)

교사가 된 상주목의 객사

기사입력 21-08-26 22:06 | 최종수정 21-08-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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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925상산관.jpg


 

상산관은 상주목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望闕禮)를 봉행하던 객사(客舍)이다. 1896년 대한제국 때 망궐례가 폐지되면서 전국의 대부분 객사 건물이 공가로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신학교의 교사로 많이 활용되었다. 상주목의 객사는 처음 왕산 밑에 있다가 1666년 성하동 경찰서 위치로 옮겨 세웠다.


  상주에서도 다른 지역과 같이 객사가 ‘공립상주보통학교’로 사용되었다. 1907년 3월 25일 9품 양재극과 1907년 5월 1일에는 1924년 1월 5일 일본 궁성에 폭탄을 투척한 의원단원 김지섭도 이 학교 부교원에 임명된 것을 보면 1907년 이전에 학교가 설립되어 교사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1910년 12월 14일에는 학교 안에 ‘공립상주실업보습학교’가 조선총독부에서 인가되었다. 그 후 ‘공립상주보통학교’의 교사로 계속 이용되다가 1937년 3월 31일 ‘상주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었고, 1938년 1월 13일에는 냉림동의 현재 ‘상산초등학교’로 이전했다. 이전한 뒤에 객사의 교사는 ‘상주공립보통학교’에서 ‘상주여자보통학교’로 분리되면서 여자보통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다.


  1936년에는 교사가 협소하여 박정현을 중심으로 ‘이전 기성회’가 조직되어 1939년 가을에 현재의 남성동 ‘상주여자중학교’ 위치로 이전했다. 이에 따라 객사가 교실로 사용하지 않게 되자 박인양, 조용연, 박정소, 박인수, 조성윤이 상산관을 ‘읍적(邑蹟)’으로 남기기 위하여 거액을 들여 샀다. 이때 객사 터에는 왕산 밑에 있던 상주경찰서를 신축 이전하기 위해 철거가 불가피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에는 조각연을 회장으로 기성회를 조직해 객사를 ‘상주공립농잠학교’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1944년 6월 상주경찰서를 신축하여 옮겼다. 이전 후에는 미취학 아동의 간이교실과 상주여자중학교의 무용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2년 6월 28일 태평루(太平樓)와 함께 만산동의 ‘임란북천전적지’ 경내로 옮겼다.


  이 사진은 ‘상주여자중학교’로 이전하기 전 남녀공학 시절 상주경찰서에 있을 때의 기념사진으로 소장자는 1925~27년경에 촬영한 것으로 추측한다. 이 사진을 통해 선현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적 삶과 문화유산 보존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사진 : 독일 베를린 김진복‎소장>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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