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2-10-06

상주 읍시장 (48)

일제강점기 중부내륙 최대 시장

기사입력 21-04-30 02:06 | 최종수정 21-04-3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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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慶尙北道尙州市場之光景.jpg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조선 시대에는 장시(場市)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장시(場市), 시(市), 시장(市場)으로 혼용하다가 1938년 이후부터는 시장(市場)이란 용어로 정착되고, 지금은 전통시장이라 한다.


 일제강점기에 상주의 시장 개수는 11~13개로서 가장 번성했던 곳이 ‘읍내장(邑市場)’이었으며, 함창, 중모, 화령, 은척장 순으로 번화하였다. 이런 시장과 시장 사이의 거리는 평균적으로 23㎞(58리) 정도였다. 1920년 때 상주의 행상 구역은 상주를 포함한 김천시, 보은군, 문경시, 의성군, 예천군. 구미시, 영동군의 8개 시군으로 이 지역이 상주의 시장경제 생활권이었다.


 ‘상주 읍내장’이 섰던 곳이 조선 시대에는 읍성 안에서 상주목 관아 동서(東西) 양쪽에 있다가 점차 관아 앞쪽인 태평루 앞으로 이동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왕산 주변의 도시화와 시내 인구 증가 등에 따라 도심이 번화해지면서 읍성 밖으로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이동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은 1933년의 ‘상주읍 신구(新舊) 시장평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옛(舊) 시장과 신시장, 경찰서, 우체국, 여자보통학교 등 관공서 시설물 위치가 도면에 표기되어 있다. 이 평면도에 따르면 옛 시장은 왕산의 좌측 서성동 147번지 일대와 성하동 13번지 일대에 있었고, 신(新)시장은 남성동 1번지와 4번지 일대 3개소로 표기되어 있다.


 이 사진은 태평루 앞 남성동 1번지, 4번지 일대에 읍시장이 있을 때 풍경으로서 대부분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복장이며, 삿갓을 쓴 사람도 많이 보인다. 관아의 출입문인 태평루 위에는 물건이 적치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관아시설과 상산관의 지붕이 보이며, 멀리 병풍산이 함께 보인다. 이 시장이 언제 관아 동서(東西) 시장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태평루가 ‘두상 공원’으로 이전되지 않은 것을 보면 1921년 가을 이전에 촬영된 사진이다.


 1919년 3월 23일 이곳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으며, 읍시장 1,490평 중에서 남정리 1-1, 4-50, 6-2, 4-65번지 722평을 1938년 3월 4일 폐지하고, 현재의 중앙시장 일대인 남정리 85-10번지 외 2필지 4,380평으로 상주읍장이 경상북도지사에게 시장 변경 허가를 받아 이전 확장을 했다. (사진 ⓒ상주박물관)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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