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1-04-17

상주공립보통학교 (45)

조선 상주목의 객사 상산관

기사입력 21-01-27 21:56 | 최종수정 21-01-2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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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慶尙北道尙州公立普通學校景.jpg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기능은 중앙에서 온 사신의 숙소였으나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 闕牌)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 경축일에 대궐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읍성 내 주요 위치에 자리하면서 동헌보다 격이 높은 건물이었고, 상산관(商山館)이라 한다.


  상주에 객사를 처음 세운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중수 기록을 보면 고려 때인 1327년 김영후 목사가 중수했고, 1343년 안축 목사가 부임해 기(記)를 지어 칭송했다. 1526년에는 불에 탄 것을 윤탕 목사 다시 지었다. 1638년 11월 조계원 목사 재임 때 소실되어 1639년 봄에 왕산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이때까지는 상주목 관아 동쪽에 접해있었고, 종전 객사 터에는 1640년 가을에 김광환 목사가 관아를 지었다. 1666년에는 이송령 목사가 중창하였고, 1845년 홍주 목사가 중수했다. 상량문은 조정융이 짓고, 그의 아들인 조시호가 썼다. 당시에는 객사 면적이 128평으로서 남쪽 지방에서 제일 큰 객사라고 한다.


  1907년에는 ‘상주공립보통학교’ 교실로 사용되다가 ‘보통학교’와 ‘여자보통학교’로 분리되면서 ‘여자보통학교’ 교실로 사용되었고, 객사에 안치되었던 전패는 1910년 경북도청으로 이관했다. 그 후 객사 터에는 왕산 아래에 있던 ‘상주경찰서’를 이전하여 1921년 6월 준공했다.


  1936년에는 객사로 쓰던 ‘여자보통학교’ 교사가 협소하여 박정현을 중심으로 ‘이전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39년 가을에 이전했다. 객사가 교실로 사용하지 않게 되자 박인양, 조용연, 박정소, 박인수, 조성윤 등이 ‘읍적(邑蹟)’으로 남기고자 거액을 들여 매입한 후 1940년에 조각연을 회장으로 기성회를 조직하여 ‘농잠학교(현재 상주여중)’로 이전했다.

 

  이러한 선각자의 행동이 진정한 지역 지도자의 올바른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전 후에는 미취학 아동의 간이교실, ‘상주여중’ 교실로 활용하다가 1992년 6월 28일 태평루(太平樓)와 함께 현재의 ‘임란북천전적지’ 경내로 옮겼다.


  이사진은 ‘상주공립보통학교’로 사용될 때로서 상주 다섯 번째 명소로 소개되었다. 앞쪽에서부터 진남루(鎭南樓), 중문, 객사(商山館) 건물이 차례로 보인다. 진남루는 팔작지붕으로 용마루 중간에 잡상을 설치한 것이 읍성 동문과 유사한 형식이다. (사진 ⓒ상주박물관)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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