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19-10-24

이름이 상호가 된 주조장(26)

최상선 주조장

기사입력 19-07-30 11:47 | 최종수정 19-07-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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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상선주조장의 전경이다. 상주읍 서정동 153번지에 설립했다. 현재의 위치는 서성동 왕산 옆 옛 상주극장 북쪽에 있었다. 박공형의 일본식 기와지붕 건물로서 외벽 지붕 밑에 대표의 이름을 그대로 상호에 사용하여 ‘최상선주조장(崔尙善酒造場)’이란 간판을 붙였다. 정면 우측의 주출입구에는 미서기 유리문을 설치하여 주조장으로 출입하도록 하였고, 외벽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담쟁이넝쿨을 심어 치장하는 한편 그 앞에 조그만 화단을 조성하여 가이즈까(kaizuka) 향나무를 심었다. 출입구 처마에 전등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전기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주조장은 1934년 8월 12일에 합명회사로 설립되었다. 대표는 최상선, 박만상이였으며, 설립 목적은 조선주의 제조 판매이다. 자본금은 중역인 최상선, 박만상, 사원인 박인수가 각각 8천원을 출연하여 전체 자본금은 2만 4천원이었다. 연간 생산량은 독주 2천8백석, 약주 90석을 생산하였고, 판매 구역은 상주 북부 일대이다. 그 후 1939년 6월 20일에는 사원인 박남희의 퇴사로 인해 그의 지분의 2분의 1씩을 최상선, 박만식이 양수했다.

  창씨개명(氏設定)으로 인해 1940년 6월 11일 대표사원 최상선(崔尙善)을 산강상선(山岡尙善)으로, 6월 12일 박만상(朴晩相)을 송촌만상(松村晩相)으로 같은 해 6월 25일 일본식 개명 이름으로 등기를 변경했다. 주조장은 10여 년간 운영되다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1944년 3월 31일 총 사원의 동의를 얻어 해산되었고, 청산인은 산강상선(山岡尙善)으로서 6월 13일 합명회사 청산이 되었다.

  최상선은 경주인이며, 1887년 10월 22일 김천에서 출생하였다. 상주로 이사하여 30여 년간 주조업을 운영하였고, 지방의 대주주로서 농장도 경영하였다. 1935년에는 읍회 의원으로 지방자치제의 운용에도 참여하였으며, 상공회부회장, 주조업조합장, 국방의회이사, 금융조합 감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상주찬기주조주식회사 사장, 독촉국민회상주위원장, 상주수리조합과 상주주조조합 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사진에 얽혀있는 배경을 통해 일제강점기 상업 등 경제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하여 각종 단체의 장을 역임하고 창씨개명도 하였던 조선인 이름의 주조장은 결국 해산이란 종국을 맞는 나라 잃은 조선인의 삶의 단면을 조금이나마 읽어볼 수 있다.

<사진 :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1935년 판)>

김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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