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상주 대표적 여관은 이노우에(井上), 카가(加賀屋), 사쿠라(櫻屋), 야마다(山田) 등의 여관이 있었다. 여관 이름은 주인의 성씨를 딴 것이며, 이 사진은 카가 여관의 전경이다. 당시에 경북선 상주 지정여관(御旅館)으로서 전화는 104번…
왕산 남쪽 밑 상주목 관아 남쪽에 있었던 연당(蓮堂)으로서 1578년경에 정곤수 상주 목사가 창건하였는데 병란에 타 버렸다. 그 후에 1614년경에 한술 목사가 중건하고, 정자 좌우에 못을 파고 연과 화초를 심었다. 1616년 강복성 목사가 더욱 아름답…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기능은 중앙에서 온 사신의 숙소였으나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 闕牌)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 경축일에 대궐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읍성 내 주요 위치에 자리하면서 동헌보다 격이 높은…
농잠학교는 1921년 3월 12일(조선총독부 고시 제417호) ‘상주공립농잠학교’로 설치 인가를 받았다. 학생은 심상소학교나 보통학교(6년) 졸업자로서 12세 이상인 자가 입학 대상이었다. 사진 하단부에는 ‘1945(4278).10.16. 優勝’으…
일제강점기 상주에는 금융조합이 7개가 있었다. ‘상산금융조합’이 1907년 9월 24일 가장 먼저 설립되었다. 그 이후에 1919년 1월 20일 함창, 1922년 9월 1일 화령, 9월 12일 상주, 1925년 12월 9일 옥산, 1928년 12월 3일 …
상주는 처음 ‘안동 우체사’의 관할 구역으로써 1895년 10월 21일 우정(郵政) 업무가 개시됐다. 그러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에 따른 소요사태에 따라 업무가 마비되어 문경으로 잠시 옮겼다가 1896년 8월 10일부터는 상주군에서 업무가 개시됐다. 18…
전문 7조와 부칙으로 된 ‘사찰령’이 1911년 6월 3일 공포되었다. 이 영에 따라 한국불교는 조선총독부 감독하에 예속되었으며, 교단은 30 본산으로 나누어졌다. 1924년에는 화엄사가 승격되어 31 본산이 되었고, 모든 사찰의 의식,…
일제강점기 상주 군청은 왕산 아래 옛 상주목의 관아 건물을 처음 사용했다. 이때 규모는 본청 1동, 59.27평에 부속 건물 4동, 36.92평으로 운영되었는데 청사가 협소하고 부대시설이 부족하게 되자 일본식 건물을 증축하면서 그대로 사용했다. …
우리나라의 초등교육은 갑오개혁 이후 근대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1895년 7월 19일 ‘소학교령(칙령 145호)’에 의해 소학교로 시작되었다. 1906년 8월 27일에는 ‘보통학교령(칙령 44호)’이 공포되면서 보통학교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인…
상주 시내는 시구개정(市區改正)을 하면서 도로의 명칭도 상주 읍성 남문을 기준으로 남북 도로를 본정(本町), 그 좌측을 서정통(西町通), 우측을 동정통(東町通) 등으로 정명개정(町名改正)을 했다. 이러한 명칭은 행정 도로 이름이고, 실제는 읍성 사대문을 기준…
소방 제도의 조직은 처음 1885년 지방에 소방조(消防組)를 창설하여 소방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상주에는 1918년 소방조가 만들어졌으며, 조두(組頭), 부조두, 소두 등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이때의 기념비는 왕산공원과 화서면 신봉리에 있다. 그 후 1…
함창 지역은 고녕가야국(古寧伽倻國)이었는데 신라에서 취하여 고동람군(고릉군)이라했다. 경덕왕 때 고녕군으로 고치고, 964년에 함녕군, 1018년 함창현으로 상주목의 속현이 되었으며, 1895년 함창군이 되었다가 1914년 상주군에 편입되어 함창면이 되었다. …
일본인 학교는 1907년 7월 11일 상주공립심상소학교로 설립되었다. 설립은 일본인회의 학교조합(學校組合)에서 설립 자금 등 경제적 지원을 맡았다. 설립 당시인 1907년에는 교사 1명에 학생 10명, 그 이듬해에는 학생 16명이었다. 이 당시 상…
1948년 12월 19일 좌익계 청년단체의 통합체인 민주청년동맹(民主靑年同盟)에 견줄 수 있는 연합체로 대한청년단이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승만 대통령이었고, 장택상·지청천·전진한·유진산·신성모·노태준 등이 최고위원회 위원이었다. 전국적으로 200만 단원의 조직체계를…
1946년 6월 청리 수상교회 청년 신도들이 청리면 병성천에 놓인 나무다리 위에 앉아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 다리는 수상리 앞 병성천에 현재의 수상교가 놓이기 전에 나무로 만들어 이용된 간이 ‘섶다리’이다. 배경으로 보이는 산은 ‘갑장산’으로 지천동 남부초등학교…
왕준연 공무원노조 초대 상주지부장이 해직 17년만에 1…
박준호(67) 전 시의원이 …
경북 상주 청리면 청리일반…
강영석 상주시장은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 활성화를 위해 …
임이자 국…
정영옥 전 상주시여성단체협의회장이 오는 8월 대한미용사 발전에 기여해온 …
국제로타리 3630지구 14지역(상주)…
아내(77) - 차 한 잔의 아내 …
사진예술은 기다림의 미학이요 순간의 미학이라고 한다.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볼 …
일제 강점기 때 상주 대표적 여관은 이노우에(井上), 카가(…
족발 순대국밥 집 좌판 위 &nb…
올해는 그동안 닦아온 기반을 토대로 더 튼튼한 교육사다리를 놓은 한 해였다. '…
수필가들의 축제인 '제20회 수필의 날' 행사가 코로나19로 인해 간소하게 치러…